이은석 사건
2000년 친부모를 토막살해한 범죄자. 1994년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인 박한상과 세트로 묶어서 패륜아의 대명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 설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박한상과는 그 배경이 전혀 다르다.
해군사관학교 장교출신인 아버지와 명문 여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 즉 전형적인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모범적인 학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이은석의 가정은 그리 화목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이자 원리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으며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이자 히스테릭 증상이 심해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9] 부부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아 각방을 쓰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 부모가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부부는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부부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한 달 이상 대화 한마디도 없는 일이 예사였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부싸움의 여파가 단 며칠만 간다고 해도 집안의 그 쌩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운데 한 달 이상이라면 어땠을지 상상 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부모 양쪽 모두 아들, 특히 이은석만 보면 항상 불만을 표시했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자주 퍼부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10]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식의 폭력이었다. 이씨의 부모는 늘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인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뭔가 못하면 당연히 혼나고 잘해도 왜 더 잘하지 못하냐며 혼이 났다. 이은석이 어릴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 방망이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어머니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그에 딸려오는 폭력은 덤. 그리고 이는 이은석이 성인이 된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나 웃긴 것은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항상 회개 기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밥을 늦게 먹은 죄를 용서해 주소서
이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씨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 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성격에 작은 키 때문에 놀림까지 받으며 속칭 왕따가 되었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친구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친구를 증오했는지 사건 후에도 그 친구를 언젠가는 죽여버릴 거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군입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흔히 알려진 기수열외처럼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당했고 심지어 그의 한달 후임이 그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광경을 본 선임들이 이은석 쪽을 혼낼 정도였다.
하지만 부모는 이은석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직업상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체만체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 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씨가 군대에 가있는 3년동안 부모는 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으며[11]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도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이은석은 부모로부터 "네가 뭘 잘 하냐? 공부나 해라, 공부도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너 같은 놈은 사회생활 못한다", "너 같은 자식 필요없다" 는 식의 상처 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은석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이 형은 이은석과는 달리 꽤 과격하고 불같은 성격이라 부모의 막장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이은석과 달리 계속 반항하면서 부모와 충돌하곤 했다. 부모는 이러한 형을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이은석에 비해 형이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훨씬 적은 셈이다. 반대로 이은석은 모든 것을 그저 꾹 참고 넘기기만 했기 때문에 형에 비해 부모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속으로 쌓인 것이 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결국 형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형에게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일로 이은석은 안 그래도 마음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인데 형의 아파트 이사를 도와주고 온 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12] 어머니가 또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어머니와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이은석에게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한 제대로 된 반항이었다.[13] 말싸움을 하면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사건 일주일 전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모두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야단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사내놈이 한심하게도 이 모양이니" 이라는 멸시와 모욕 뿐이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에는 6일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식사 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놀라울 따름...[14]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부모가 그런 이은석을 보고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어야지만 정신을 차릴 모양이로군 6일간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그는 부모와 잘 지내기는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인을 결심했다.
사건 당일 새벽 양주를 연거푸 마신 후 어머니부터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를 죽인 후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고 4시간 동안이나 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했지만 날이 밝아오자 아버지가 잠을 깨서 이 광경을 보고 혼낼 것을 걱정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도 살해한다. 둘을 한번에 죽이지 않고 4시간의 시간차를 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내 여러 곳에 유기하고 청소 및 뒷처리를 했다.
이씨는 사건 직후 경찰서 진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라며 울먹였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은석의 형이 했던 말인데 부모를 죽인 동생을 원망하기는 커녕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 는 말을 하면서 공범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도 했다. 결국 공범은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부모를 죽인 동생을 두둔하고 나선 것을 보면 같은 집에 살아오면서 동생이 당해오던 폭력을 보며 자신도 느낀 게 많았던 모양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책이다.
부모를 죽인 행동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기는 하지만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을 살펴보면 매우 씁쓸한 사건이라 하겠다. 사실 이런 병크는 근성, 정신력을 강조했다 천조국한테 깨진 어느 막장 국가나 어느 막장 군대의 영향이 대한민국에 아직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모들의 집안 환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친정 어머니(즉, 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는 알고 보면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이은석과 유사하며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 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한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즉, 이은석 사건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정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아동학대의 되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9] 고인드립성이 강하지만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죽은 이 아줌마가 군인 장교와 결혼한 이유가 어떤 29만원 찌질이의 부인처럼 영부인이 되어보겠다는 게 목적이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본의아니게 남편이 일찍 전역하는 바람에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버렸고 그게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남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아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렸다고 한다. 죽은 사람이지만 군사 독재를 오래 겪었던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이 부부가 출세 못한 게 천만다행이다. 솔직히 29만원이나 그 마누라도 자기 자식은 저렇게 홀대 안했으니 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출세했으면 찌질이 뺨치는 악랄한 높으신 분들이 되었을 듯
[10] 이 젓가락에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유리창에 금이 갔다고 한다. 당시 이은석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11] 물론 집이 부대에서 지나치게 멀다든지 형편이 어려워 365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면회 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등 특별한 사정 때문에 아들의 부대에 면회를 가지 못하는 부모들은 많이 있다. 이런 경우 사정상 어쩔 수 없어 전화로 목소리를 듣거나 휴가 나온 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 서술했듯이 이 집 부모는 형편이 어려운 집도 아니고 직업상 바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은석은 이 일로도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12] 형의 아파트가 어땠는지 어머니한테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어물어물댔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
[13] 반항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그저 조용한 반항일 뿐이었고 이 정도로 적극적인 반항을 한 것은 처음이다.
[14] 부모가 잠깐 외출한다든지 둘 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 해결했으며 굶는 일도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다음은 피고인 이은석이 현장검증을 했을 때 이웃 주민들과 여러 언론매체의 기사의 일부분이다. 현장검증이 진행되는 동안 이웃 주민 50여명이 집 근처에 몰려와 “ 젊은이가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느냐” 며 치를 떨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은 이씨가 부모의 사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며 욕을 하거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훈구 교수의 연구자료에서 이은석이 군 제대 후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 놓은 기록 중 아동학대 사실만을 발췌한 것
⑴ 밥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 던진 것, (유리창 금감)
⑵ 무슨 일인지 형과 같이 팬티만으로 베란다에 손 들고 서 있었음
⑶ 다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은 것 (초 3 쯤)
⑷ 전화 메신저 역할 미숙에 따른 즉흥 구타, 따귀, 손바닥 (초 후반, 중고전반)
⑸ 새에 대한 논쟁끝에 물건 집어던지고 주워오라며, 컵을 깨고 형을 쟁반으로 찍은 일 (중2)
⑹ 키가 작아서 사회생활 힘들 것이라는 모욕 (고3) 등이다.
'주의 범죄 사건 사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급 정보입니다.- 전화사기...외 (0) | 2011.10.12 |
---|---|
자신의 아이들 두명을 살해한 고문기술자,, 테레사 크놀 (0) | 2011.10.05 |
살인범이 인기를 끈 실제 사건 (0) | 2011.10.04 |
성폭행 위험에서 벗어나는 16가지 방법 (0) | 2011.09.29 |
스마트폰 함정 조심 하세요 (0) | 2011.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