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중국 송나라의 유염(兪琰)이 쓴『서재야화(書齋夜話)』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름을 어찌 하필 돌에다 새기는가 有名何必鐫頑石 길 가는 사람 입이 비(碑)와 같은데 路上行人口似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행적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 한다. 그 대표적인 수단이 돌에다 이름을 새기는 것인데 이것이 비석이다. 그러나 돌에 새긴 글은 세월이 지나면 마멸된다. 돌에 새기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구비(口碑)’이다. 즉 돌에 새긴 비가 아니라 입으로 전해지는 비(碑)라는 뜻이다. 그러니 ‘석비(石碑)’보다 ‘구비’가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선정비(善政碑), 강요된 칭송과 허위의 오래된 역사
동양 특히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는 사람들의 명예욕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비석이 세워졌다. 이 중에는 죽은 후에 진심으로 그 사람의 덕망을 추모해서 후인들이 세운 비석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행적을 과시하기 위하여 스스로 세운 비석도 적지 않다. 가장 흔한 것이 선정비(善政碑)이다. 이런 비석에는 돌에 새겨진 내용이 과장되거나 허위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폐단을 신랄하게 풍자한 백거이(白居易)의 『청석(靑石)』이란 작품이 있는데 그 첫 대목은 이렇다.
청석(靑石)이 나는 곳 남전산(藍田山)인데 靑石出自藍田山 수레를 연이어 장안으로 싣고 온다 兼車運載來長安 석공은 갈고 쪼아 무엇에 쓰려는가 工人磨琢欲何用 돌은 말을 못하니 내가 대신 말하노라 石不能言我代言 무덤 앞 신도비(神道碑)는 되고 싶지 않으니 不願作人家墓前神道碣 봉분 흙 마르기도 전, 그 이름 잊혀지리 墳土未乾名已滅 관청 앞길 덕정비(德政碑)도 되고 싶지 않으니 不願作官家道傍德政碑 실제 사실 안 새기고 헛된 말만 새기는 걸 不鐫實錄鐫虛辭
이 ‘덕정비’가 선정비이다. 지금도 지방에 가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등이 새겨진 크고 작은 선정비를 길가에서 수없이 볼 수 있는데 그 고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전임 사또의 강압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지난 달 서울의 동작문화원 앞에 세워진 전임 동작구청장의 공덕비가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유쾌하지 못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정비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명종 때 합천군수를 지낸 이증영(李增榮)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고을 사람 주이(周怡)가 다음과 같은 송별시를 지었다고 한다. 주이는 주세붕(周世鵬)의 증손자이다.
만사람 입이 비(碑)인데 돌을 어찌 쓰리요 萬口是碑安用石 말 한 마디가 전별금이지 돈을 꼭히 줄 것 없네 一言爲?不須金
돌은 없어지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사라지지 않아
선정을 베풀고 떠나는 이증영을 위해서 굳이 비석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고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여 ‘구비(口碑)’가 이미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을 사람들은 후일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를 기리는 선정비를 세웠다. 그가 죽기 4년 전이다. 지금도 합천군에는 이 선정비가 남아있는데 언젠가는 마멸되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증영의 ‘구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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