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마시고 싶어요./ 안 성란
당신과 함께하는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네요.
싸늘한 바람 불어오면
옷깃을 여미며
모닥불 피워 놓고 불꽃을 바라보며
소나무 의자에 앉아서 장작불 뒤적거리며
떨어지는 낙엽 주워
잊히지 않는 가을을 만들고 싶어요.
동그란 찻잔을 두 손에 감싸고
뽀송뽀송 털실로 엮어 만든
따듯한 스웨터 어깨에 걸쳐 놓고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가을의 향기를 남기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있는 가을
추억이 떨어지네요.
한 잎 바람에 날리고
두 잎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아도
눈 감아도 찾을 수 있는 당신 곁에서
가을이 가기 전에
아름다운 가을을 마시고 싶어요.
먼 산에 걸터앉은 노을
쓸쓸한 표정으로
저만치 달아나는 세월의 끝에 앉아서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가을을 마시고 싶어요.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 이해인님의 글 중에서 -